2011/08/24 05:06

칠일재 book

olympus pen e-p1

 상복으로 갈아입고 승려의 독경 소리에 맞추어 다 같이 정면으로 관을 대하자 지금까지 막연히 공유되어오던 죽음은 개별적이고 보다 사적인 것으로 변했다. 준비에 바빠 다른 곳으로 돌려졌던 시선이 단지 죽음 앞에 던져졌고, 그로 인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결국 기억 속의 고인의 생(生)으로만 쏠리게 되었다. 분향이 시작되고 조문객들의 얼굴이 보이자 그들의 육신이 추억을 되살려 고인이 있었다는 것을 한층 더 실감하게 되고, 그러기에 '지금은 없다'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피가 슬픔으로 흘러들어갔다.

-

 얼굴은 조용히 그 밑에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눈 앞에 다가온 소실(燒失)의 조짐이 머리에 떠오르며 갑자기 육신의 내부에서 소요가 일었다. 이제 다시는 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상상이 가져다주는 절망은, 현실로 눈 앞에 실재하는 얼굴이 가진 압도적인 존재의 힘으로 억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을 말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육신이 죽음이란 계기를 통해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겪는 며칠 동안의 긴장에는, 그가 감수해야 하는 고통의 빛이 배어나는 것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을 부패의 술렁거림이,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마치 날개미가 나무를 갉아먹는 소리처럼 희미하게 전달되기 때문이 아닐까?

- 히라노 게이치로

2011/08/22 06:03

08/03/19 another_sky

The Deep. Jackson Pollock. 1953. Oil and enamel on canvas.


맘이 편치 않은 하루의 시작.
한국에서의 일이 걸리적거린다.
 
이렇게 먼 곳에 있어도 달랑 메일 하나로 기분이 이렇게 되는구나.
점심이 될 때까지 부질없이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가 3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모처럼 아침부터 내내 하늘이 맑았으니 버스를 타기로 한다.
퐁피두에 갈테니 83번을 타고 가다가 47번으로 갈아타면 된다.

서울에서나 여기에서나 버스처럼 음악을 듣기 좋은 곳이 없지.
잘 마른 빨래 같은 Karen Ann 의 목소리.
요즘엔 잘 안 듣던 음반인데 아무래도 이 곳에 오니 어울린다.

별 실수 없이 잘 갈아타고 잘 도착. 어쩐지 나는 어디에서나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쉽다.
전부터 봐뒀던 레코드점에서 사고 싶었던 Tahiti 80의 앨범을 한 장 사고, 퐁피두로 걸었다.

오늘은 수요일.
퐁피두에서 6시부터 9시까지 무료 관람을 할 수 있는 날.
여권을 보여주고 무료 티켓을 받고 줄을 서서 입장. 이거 왠지 뿌듯.

세 시간 동안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녀도 다 볼 수는 없었지만(정말 좋은 작품들이 엄청 너무 많아!),
난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은 많으니까. 다음 주에도 가야지.
아쉬운대로 엽서로라도 갖고 싶은 그림들을 몇 장 샀다.

돌아와 이렇게 낮은 조도의 조명에 그림을 비춰보며 오늘 산 음반을 듣는다.
음악도 그림도 좋은 밤이로구나.

모든 걸 조금 더 심플하게.
괜찮을 거야. 다.


2011/08/21 12:33

11/08/21 ordinary

olympus pen e-p1

너무 오랜만에 들르는 이 곳.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들도 변하고, 나는 이제 스물 일곱.

몇 년 전 여행기는 아직도 노트 속에 그대로-
애초에 왜 정리하려고 했더라 가물가물.
그래도 끝은 맺어야지.

2010/03/04 06:16

08/03/18 another_sky

contax g2

내일이면 또 새로운 사람들이 숙소에 들어온다.

나도 이제는 익숙하게 그 집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겠지.


생각해보니 지금껏 민박집 언니, 정선씨, 그리고 베르시에서 만난 홀로 여행하던 언니까지.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은 참으로 정직하다.


그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의 나이, 그 사람의 직업 같은 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단지 그 사람이 본 것, 그 사람이 느낀 것,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화한다.


산뜻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약간의 여운이 남는 순간들.


내일은 또 어떤 사람이 이 방으로 들어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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